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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89일 뉴스는 비행기 안에서 승객과 말다툼을 벌인 ‘JetBlue’ 항공 소속의 승무원 Steven Slaters의 이야기로 뜨거웠다. 사건은 피츠버그 발, 1052편 항공기가 뉴욕 JFK공항에 착륙한 직후 발생했다. 안착은 했지만, 비행기가 멈추지 않은 상태였다. 모두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할 순간에 한 여자 승객이 벨트를 풀고 일어나 짐칸에서 가방을 꺼내려고 했다. 놀란 슬라이더가 다가가 지금 열면 짐이 떨어져 위험할 수 있으니 자리에 앉으라고 부탁했으나 이를 무시하고 계속하다 가방이 그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화가 난 슬라이더는 사과할 것을 요구했지만, 사과는커녕 오히려 화를 내며 욕을 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다스리지 못한 그는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내가 승객에게 욕까지 먹어가며 이 일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 오늘 당장 그만둘 것이다.”라고 기내방송을 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자 그 여자 승객에게 욕을 한 후 조리실로 가서 맥주를 마셨다. 이성을 잃은 그는 승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비상탈출구를 열고 비상용 슬라이드를 타고 내려와 집으로 가버렸다.

 

 지인 중 항공사와 관련 있는 분들이 있다. 한 분은 현재 항공사의 간부이고, 다른 한 분은 젊은 시절 승무원을 하다가 그만두신 남자분이다. 그분들께 슬라이더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여쭤보았다. 현재 근무하는 분의 대답은 아주 단호했다. “아무리 승객이 못되게 굴어도 참아야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승무원이 그런 행동을 해서 되겠냐. 그 사람은 직업의식이 없는 사람이다. 욱하는 성질 하나 때문에 회사가 입을 피해를 생각해봐라. 만일 활주로에서 무슨 사고라도 났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형사상으로도 처벌을 받겠지만, 회사에서도 중징계를 면치 못할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전직 승무원이었던 분은 같은 입장이어서인지 슬라이더의 행동은 잘못이지만, 그의 심정은 백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분 역시 일등석 손님이 자신을 하인 취급하며 무시하는 것을 참지 못해 싸웠고, 그것이 문제가 되어 사표를 던지고 나왔다. 그 시절만 해도 비행기 승무원은 모두가 부러워할 만큼 좋은 직업이었다. 일이 힘든 것은 참겠는데 기본이 안 된 사람들과 부딪히는 건 견디기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무엇이 슬라이더의 인내심을 폭발하게 하였을까? 그는 JetBlue 항공에서 십 년, 타 회사의 경력까지 합하면 이십여 년을 성실하게 일해 온 베테랑 승무원이었다. 그런 사람이 자기가 받게 될 불이익을 몰라서 그런 행동을 했을까? 그는 승무원으로 일하면서 개념 없고 몰상식한 승객들로부터 수없는 모욕을 당했으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다 보니 늘 참아야 했다. 단순히 가방이 머리에 떨어졌다고 그런 행동을 한 건 아닌 것 같고, 더 이상은 못 참겠다고 느낀 순간 밟혔던 자존심이 머리를 들면서 인내심의 부비트랩이 터져 버린 건 아닌가 싶었다. 참는 데도 마지노선이라는 게 있다. 최후의 방어선을 넘으면 터지고 마는 것이다. 그에게 분노조절장애라고 비난하던 여론은 그의 고충을 듣고서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모든 걸 실패하고 잃었던 시절이 있었다. 붙어 있는 목숨을 어쩌지 못하여 선택한 것이 아는 사람 없는 곳으로 떠나는 것이었다. 낯선 도시에서 먹고 살기 위해 한인이 운영하는 가게에 취직했다. 책상 앞에서 회계업무만 보던 사람이 영업과 매장 일을 하려니 피곤하고 힘들었다. 장부와의 싸움은 혼자 하면 되는데,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보다 힘들었던 건 사장 부인의 무례함이었다. 직원을 자기 집에서 밥 얻어먹는 하인쯤으로 여기니 예의라든지 인격적인 대우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대 놓고 무시하고 말을 함부로 하니 일하러 온 사람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다른 직장을 찾아 나갔다. 그래서 신문 구인 광고란엔 언제나 그 집 상호가 올라있었다.

아무리 작은 구멍가게를 해도 사장님,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듣고 싶어 하는 게 한국 사람의 심리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장 부인은 손님들에게 아줌마, 아저씨라고 불렀다. 그러면 자기가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손님들이 나를 좋아하는 것도 싫어했고, 한가할 땐 거래처에 전화 세일을 하는데 자기보다 주문을 많이 따내는 것도 싫어했다. 매상을 올라가면 자기에게 좋은 일인데 왜 그렇게 심통을 떠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남편이 내 편을 드는 발언을 한마디라도 했다가는 그렇게 좋으면 저 여자랑 살라며 내 앞에서 싸우기도 했다.

 

 어느 날,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지방에서 오는 손님이 지금 가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전화를 했다. 그날따라 남자 직원은 일이 있다며 일찍 퇴근했고 사장과 나만 남아있었다. 퇴근 시간이 되었으니 그냥 가도 그만이지만 인정상 그러질 못했다. 손님이 고른 물건 계산서라도 써주면 빨리 끝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남아 도와 드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부인이었다. 남편이 올 시간인데 안 오니 걸은 모양이었다.

내 목소리가 들리자 앙칼진 목소리로 따졌다. “이 시간에 왜 거기 있어? 우리 남편하고 대체 지금 뭐하는 거야?” 마치 불륜 현장이라도 잡은 양 자초지종을 들어보지도 않고 반말을 하며 제멋대로 지껄여댔다. 무례함과 싸가지 없는 언행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화가 난 슬라이더가 무식한 승객에게 무슨 욕을 퍼부었는지, 내가 그 정신병자에게 무슨 욕을 퍼부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분명한 건 밟히기만 하던 지렁이가 꿈틀했다는 것이다.

 그달 벌어 간신히 그달을 사는 주제에 다른 직장을 알아보지도 않고 그만둔 것은 미친 짓이었다. 두 달만 아파트 세를 못 내면 쫓겨날 판에 열쇠를 던지고 나와 버렸다. 자존심이 건드려지는 순간 굶어 죽는다 해도 그런 부류와는 같은 공간에서 일할 수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뿔이 있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무시를 당하고, 힘든 일을 겪어도 살아야 하기에 치솟아 오르는 뿔을 꾹꾹 누르고 살 뿐이다. 여기 아니면 설마 밥 굶어 죽겠냐며 사표를 던지고 나오면 얼마나 시원할까마는 대부분의 소시민은 없는 게 죄여서 참고 산다.

2의 슬라이더들이 그의 돌발적인 행동에 대리만족을 느끼고 박수를 보내며 그를 영웅 대접하고 있다. 그의 행동이 뉴스에 처음 보도되었을 때, 아무리 화가 나도 어떻게 승무원이 그럴 수 있냐며 비난하던 사람들까지 승무원의 고충을 알게 된 후 그의 손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나도 슬라이더를 비난하고 싶지 않다. 물론 규칙을 어긴 것은 잘못이지만 참고 또 참느라 숯덩이가 되었을 그의 마음이 충분히 헤아려졌기 때문이다.

 

 그가 리얼리티 쇼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리얼리티 쇼가 잘못된 것을 우상화하는 면이 있어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그는 자기의 타버린 속을 내보이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심정을 토해놓을 기회를 얻게 되었다. 아무쪼록 그 방송을 지켜볼 시청자들이 그를 폭발하게 한 사람이 자신은 아니었는지, 혹 손님은 왕이라는 말을 잘못 적용하며 산 건 아닌지 돌아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 년 후 그에게는 정상을 참작하여 원래의 형량보다 감해진 1년의 집행유예와 만 불의 벌금이 책정 되었고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을 권리가 있고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아무리 하찮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일지라도 함부로 대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사람을 존중하고, 아껴주고,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여줄 때 좀 더 따뜻하고 살기 좋은 사회가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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