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8 02:19

(에세이) 통곡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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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생각하는 여자 이야기꾼은 박완서다.

 박완서 선생님의 진솔한 글에 반해 열한 권의 책을 구해 읽었다. 유작인노란집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그분의 신작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이 팬의 한 사람으로서 못내 아쉽다. 문인은 이름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생전에 발표한 글이나 출간한 서적도 남게 된다. 활자화 된 글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따금 그게 서늘하리만치 등골이 오싹하다. 글을 쓴다는 것이 두려워지는 순간이다. 썼다고 다 글이 아니요, 출간했다고 다 책이라 할 수 없으므로. 지구에 종이쓰레기만 더 보태 주고 가는 건 아닌가 하는 자책에 시달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분의 책 중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란 단편집이 있다.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그 말이 대체 무슨 뜻인지 너무 궁금했다. 박완서 책 전체를 통독한 친구도, 가까운 문우들조차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궁금증이 발동하면 해결을 해야 잠이 오는지라 인터넷을 달달 뒤져 찾아내고야 말았다. ‘나의 가장 마지막까지 지니고 있는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 제목에 담은 작가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순 없었지만, 독자인 나 자신이 마지막까지 지니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만든 묘한, 그러면서도 슬픈 느낌의 제목이었다. 25회 동인문학상을 받은 그 소설은 주인공이 형님과 전화통화를 하는 형식으로 전개가 되는데 대화체가 아니라 형님의 말을 화자가 되받아 하는 특이한 구성이다. 독백과도 같은 문장들을 읽노라면 민주화의 희생양이 된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어머니의 깊은 슬픔이 뼈 속 깊이 공감된다. 이 소설은 연극인손숙선생님이 모노드라마를 해서 유명해지기도 했다. 소설의 말미에통곡의 벽이라는 말이 나온다. 수화기를 통해 동서의 말을 들어 주던 형님이 울자 주인공은 억지를 쓰듯 이렇게 말을 한다. “형님 지금 울고 계신 거 아뉴? 형님, 절더러는 어찌 살라고 세상에, 형님이 우신대요? 형님은 어디까지나 절벽 같아야 해요. 형님은 언제나 저에게 통곡의 벽이었으니까요. 울음을 참고 살 때도 통곡의 벽은 있어야만 했어요. 통곡의 벽이 우는 법이 어디 있대요.” 대꾸도 없이 듣고만 있어 무심한 것 같았던 형님이 그녀에겐 통곡의 벽이었다. 형님이 하소연을 들어주지 않았다면 자식을 잃은 후 다가온 죽음보다 무서운 고통의 시간들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자기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최근에 지인의 추천으로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176회 김제동편을 찾아보았다. 자기의 상황이 좋지 않아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걸 보고 힐링이 되었다며 보기를 권했다. 그 프로는 한 사람의 스타를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는 컨셉의 토크쇼인데 176회에는 스타가 아닌 500명의 일반인을 게스트로 초대하였다. 김제동다운 발상이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지만 통곡의 벽이 되어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위로 하고 위로 받는 훈훈한 모습들을 보면서 어느 회보다 힐링 캠프 본연의 취지를 다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나를 비롯한 현대인이 얼마나 외롭고 고독한 존재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 시간이기도 했다. 가족이 있고 주위에 사람이 많아도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함께 고민해 주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게 현실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말이다. 그래서들어줘서 고마워라는 방송용 문구가 애절하게 와 닿았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대인은 누군가의 말을 들어 주는 일에 인색해 져 버렸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면이 자신에게 호소하는 소리조차도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산다. 그만큼 사는 게 각박해 졌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애썼다, 고생했다를 외쳤을 때 너나없이 눈물이 앞을 가렸던 것이다. 남을 사랑하는 일도 힘든 일이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통곡의 벽이라는 말이 온통 나를 사로잡았던 한 주였다. 누구나 통곡의 벽이 필요하다. 이 세상 어딘가에 누군가 한 사람쯤은 내 말을 들어주고, 나를 이해해주고, 내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내 통곡의 벽은 누구이고, 나는 누구에게 통곡의 벽이 되어 주며 살았을까?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내 안의 나에게, 그리고 나를 위해 살던 마음이 타인을 향한 마음에게 수줍은 악수를 청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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